익산, 태백, 영월, 강릉, 동해, 문경, 상주, 안산, 시흥, 울산, 창원, 정읍, 보령.
도시 이름만 이어 적으면 제법 긴 여행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가 다닌 길에는 관광지가 거의 없었다. 목적지는 재해자를 만나기로 한 장소이거나 공단, 병원, 근로복지공단, 노동청이었고, 때로는 재해자가 오랫동안 일했던 사업장이었다.
참 많이도 다녔다.
새벽에 집을 나서 내비게이션에 낯선 주소를 입력하면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이 화면에 뜬다. 두 시간 반, 세 시간, 네 시간.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지만, 내가 찾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산재 사건을 맡으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온 노동의 지도가 남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의 귀에는 수십 년 동안 들었던 기계 소리가 남아 있고, 어떤 사람의 폐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가 쌓여 있다. 누군가의 어깨에는 하루에도 수백 번 반복했던 동작이, 누군가의 무릎에는 무거운 것을 들고 오르내렸던 계단이 남아 있다.
산재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사고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업무상 질병은 대부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인 경우가 많다.
아픈데도 출근했던 날, 일을 쉬면 자리를 잃을까 봐 통증을 숨겼던 날, 병원에 갈 시간을 내지 못했던 날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사건기록은 몇십 장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긴 노동의 시간은 때로 삼십 년, 사십 년을 넘는다.
그래서 나는 서류를 읽고도 다시 길을 나선다.
강릉과 동해의 바닷길을 지나 영월과 태백으로 향했고, 충주와 제천에도 여러 번 발길이 닿았다. 문경과 상주를 거쳐 구미로 방향을 틀었고, 안산과 시흥의 익숙한 공단길도 수없이 달렸다. 때로는 울산과 창원까지 길게 내려갔고, 정읍과 보령, 서울을 오가기도 했다. 익산으로 향하는 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건을 따라 지나온 도시만 이어도 작은 지도 하나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고속도로를 달려도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늘 달랐다. 만나기 전에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도시가 돌아오는 길에는 한 사람의 얼굴로 기억되었다.
장시간 운전을 하고 나면 어깨부터 단단하게 굳었다.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정장 재킷을 벗은 채 한동안 목과 어깨를 돌리기도 했다. 종아리가 묵직한 날에는 구두를 벗고 발끝을 움직였고, 밤늦게 낯선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면 차문이 잠겼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사건가방과 노트북을 들고 계단을 오르다 문득 내 몸도 출장의 거리를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재해자의 몸을 생각하게 된다.
몇 시간 운전한 것만으로도 어깨와 허리가 이렇게 굳는데, 이 사람은 같은 자세로 몇 년을 일했을까. 하루 동안 반복한 동작도 몸에 남는데 수십 년의 노동은 사람의 몸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직업력을 묻는 질문 하나도 가볍게 던질 수 없었다.
“그 작업은 하루에 몇 시간 정도 하셨습니까?”
“무거운 물건은 몇 킬로그램 정도였습니까?”
“언제부터 통증이 시작됐습니까?”
질문은 짧지만 답변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 있었다. 처음 취직했던 날부터 일을 그만둔 날까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견뎠던 시간과 아픈 몸으로도 놓을 수 없었던 일이 함께 따라 나왔다.
내가 전국을 다닌 이유가 산재 사건만은 아니었다.
여러 지역을 돌며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했고, 최근에는 김천과 성주에도 다녀왔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상처는 산재처럼 엑스레이나 MRI에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다. 그러나 흔적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메신저가 전송된 시간, 회의실에서 오간 말, 유독 한 사람에게만 반복된 지시, 그리고 이야기를 꺼내려다 잠시 멈추는 침묵 속에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하다 보면 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말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잠들지 못하게 하고, 출근길에 숨을 막히게 하며, 결국 멀쩡하던 사람을 일터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기계와 분진이 몸을 다치게 한다면, 어떤 일터에서는 사람의 말과 관계가 마음을 다치게 한다.
서울과 인천, 안산, 성남 등지로 강의를 갈 때에는 조금 다른 자리에 선다.
이미 벌어진 일을 조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막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선다. 누군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고통을 확인한 뒤, 다른 조직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야기하는 일이다.
산재 사건과 직장 내 괴롭힘 조사는 서로 전혀 다른 업무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일을 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일한다는 이유로 어디까지 견뎌야 하는가.
도로 위에서 나는 그 질문을 오래 생각했다.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해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야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피로가 눈꺼풀을 무겁게 누르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다시 길을 나서 가로등 드문 국도를 달리다 보면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몇십 미터 앞만 겨우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노동의 고통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오래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그 깊이와 흔적이 드러난다.
매일 조금씩 나빠지는 청력도, 반복되는 통증도, 출근할 때마다 조금씩 작아지는 마음도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어렵게 말을 꺼내고,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현장에 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내게 단순한 출장이 아니었다.
서류에 적히지 않은 표정을 보고, 말이 갑자기 빨라지는 순간과 목소리가 작아지는 대목을 듣는 일이었다. 사건번호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사람의 생활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노무사는 어쩌면 사람이 이미 많이 지친 뒤에야 도착하는 직업인지도 모른다.
몸이 망가지고, 관계가 무너지고,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진 뒤에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 사람이 왜 그 자리까지 밀려왔는지, 그동안 무엇을 견뎌 왔는지는 끝까지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전국의 도시를 지나며 내가 본 것은 거창한 영웅들이 아니었다.
아픈 몸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사람, 부당한 말을 듣고도 다음 날 다시 출근했던 사람, 자신의 병이 일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사람들이 견뎌 온 시간이야말로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종종 이른 새벽에 차에 시동을 걸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이름을 읽어 주면 사건기록이 든 가방을 조수석에 싣고 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몇 시간 뒤 도착할 곳에는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산재는 숫자로 접수되고 사건번호로 불리지만, 결국에는 한 사람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그 먼 길을 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